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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공원의 호수 이름은 번당(樊塘)
작성자 관** 등록일 20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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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방동이 된 번당리(樊塘里)는 그 곳에 번당(樊塘)이라는 못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마을이름이다. 번당(樊塘)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는 하택(下澤)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을 보면 하택이 등장한다.

하택(下澤)이 금천현(衿川縣) 읍치(邑治)에서 북쪽으로 7리(里)에 있다고 하였다.

 

하택을 번당으로 보는 이유는 두 지명이 같은 우리말 지명에서 파생된 소리를 표기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택은 ‘알못’의 차자표기로 생각된다. 하(下)의 훈이 ‘아래’이고, 택(澤)의 훈이 ‘못’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하였을 것이다.

지금도 경상도 지방에서는 아래를 ‘알’이라고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하(下)가 왜 ‘알’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로 사용되었는지가 납득이 될 것이다. 번당(樊塘) 또한 ‘알못’ 내지는 ‘울못’ 의 차자표기로 생각된다. 번(樊)의 훈이 울타리를 뜻하는 ‘울’이고, 당(塘)의 훈이 ‘못’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되었을 것이다.

 

하택의 또 다른 이름은 대야택(大也澤)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하택(下澤)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번당은 <<여지도서>>에서는 대야택(大也澤)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여지도서>> <금천현>을 보면 대야택(大也澤)이 금천현(衿川縣) 읍치(邑治)에서 북쪽으로 10리(里)쯤에 있다. 용추(龍湫)의 주(註)를 보라고 하였고,

 

같은 책 용추의 주를 보면 용추(龍湫)는 검지산(黔芝山)의 꼭대기에 있다.

우묵하게 꺼져 저절로 둥그런 못이 되었는데 낮고 물에 잠겨 있으며, 매우 깊고 막힘이 없어 바닥이 없다. 세간에 전하기는 ‘용추(龍湫)와 방하곶(方下串), 율일리(栗日里)의 대야택(大也澤)은 서로 통한다. 옛사람이 용추에 저(杵)를 빠뜨렸는데 뒤에 방하곶에서 그것을 얻었다.

 

민간에서는 저(杵)를 방하(方下)라고 하는 까닭에 방하곶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또 기우제(祈雨祭)를 지낼 때 용추에서 관분(?盆)을 잃어버렸는데 뒤에 대야택에서 그것을 얻었다. 민간에서는 관분을 대야(大也)라고 하는 까닭에 대야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라고 한다. 민간에 전하기는 ‘이 못은 곧 신룡(神龍)이 사는 곳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날이 가물 때 경건히 정성을 드려 비를 빌면 번번이 영험이 있다.’고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야택은 율일리에 있는 못이 아니다.

율일리는 지금은 광명시 하안동(下安洞) 밤일마을이 되었다. 밤일마을에 있던 못은 대야택이 아니라 대택(大澤)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을 보면

 대택(大澤)이 금천현(衿川縣) 읍치(邑治)에서 서쪽으로 5리에 있다. 날이 가물면 비를 빈다고 하였다.

 

금천현(衿川縣) 읍치(邑治)에서 서쪽으로 5리에 있다면 밤일마을에 있던 못을 지칭하는 것이 틀림없다. 대택은 조선 현종(顯宗) 때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편찬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일한 내용으로 등장하지만 그 이후에 편찬된 지리서에서는 1864년에 김정호(金正浩, ?~1864)가 저술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만 등장할 뿐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대택이 메워져 없어졌기 때문에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대택이 없어지면서 번당의 또 다른 이름인 대야택(大也澤)을 대택(大澤)과 혼동하여 율일리에 있다고 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와 같이 번당이 하택이고, 하택이 대야택이라고 할 때 그렇다면 번당은 어디에 위치한 못인가?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우 금천현 읍치에서 북쪽으로 7리에 있다고 하였고, <<여지도서>>의 경우 금천현 읍치에서 북쪽으로 10리쯤에 있다고 하였다. <<여지도서>>에 당시 금천현 하북면(下北面)에 속했던 번당리가 금천현 관문에서 15리의 거리에 있고, 우와피리가 금천현 관문에서 10리의 거리에 있다고 한 것을 고려한다면 번당은 번당리 쪽보다는 우와피리 쪽에 가깝게 있어야 하고, 따라서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공원호수가 번당일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1989년에 간행된 <<서울특별시 동명연혁고>> <관악·동작구편(冠岳·銅雀區篇>을 보면 장백에웅덩이가 소개되어 있다.

 

장백에웅덩이에 대해 현재 보라매공원 운동장 자리로 광복(光復) 이전부터 이곳에 만여 평 정도 되는 늪이 있어, 메기 가물치 붕어 등이 서식하여 주민들은 사철 이 늪에서 고기잡이를 하였으나 공군사관학교(空軍士官學校)가 이 자리에 들어서면서 운동장이 되었다고 한다고 하였다.

 

공원호수는 보라매공원 축구장 옆에 있는데 장백에웅덩이가 운동장이 되었다면 아마도 이 웅덩이가 축구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렇다면 공원호수와 장백에웅덩이는 서로 연결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고, 또한 장백에웅덩이의 ‘장백에’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도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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