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영등포구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주로 경기도 시응현 하북면(영등포동, 신길동), 상북면(당산동, 도림동, 문래동, 양평동, 대림동), 남산면(양화동)에 속하였다. 그러나 여의동은 한성부 연희방에 소속되었으며, 목마장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구한말 경인, 경부철도의 부설과 융의 4년(1910년)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도의위치 및 관할구역]을 새로 제정 시행하였는데, 이때 경기도 시흥군의 군청위치를 하북면 영등포리로 이전하면서 한촌인 영등포리가 교통, 상업의 중심지로 급속도로 성장발전하여 1920년에는 면으로 승격하여 영등포리, 당산리, 양평리를 관할하였다. 1936년 4월 일제는 당시 경성부의 구역을 크게 확장하였으며 동부, 서부, 영등포의 3개 출장소를 설치하였다. 이때 현재 영등포지역은 경성부 영등포 출장소 영등포정, 여의도정, 당산정, 도림정, 양평정, 양화정, 실길정으로 재편성되었다. 단 대림정은 경기도 시흥군 동면에 속해 있었다. 1943년 6월 10일 출장소를 영등포 구역소로 개칭하였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시장이 관할하는 서울시 영등포구가 되었으며, 1946년에 종래의 일본식 동명인 [정]을 우리말 동명인 [동]으로 변경 통일하였다. 그 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성장발전하여 1973년 7월 1일 관악구 1977년 9월 1일 강서구 1980년 4월 1일 구로구가 분구되어 경기도 지방과 경계가 아닌 새로 분구된 구로 둘러 싸이게 되었다. 정말로 어이없는 오자에다가 내용 또한 사실과는 다른 내용이 수두룩하다. 행정하시는 분들이 올린 글이라서 그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래도 영등포구청에서 개설한 공식사이트에 올린 글이니 여러 사람이 보고 그렇게 알 것 같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문맥은 그대로 두고 다음과 같이 교정해 본다. 현재의 영등포지역은 조선시대에는 대체로 경기도 시흥현 하북면(영등포동 신길동 대림동), 시흥현 상북면(영등포동 당산동 도림동 문래동 양평동), 양천현 남산면(양화동)에 속하였다. 그러나 그때 여의도동은 한성부 연희방에 소속되어 있었고, 목축장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구한말 경인·경부선철도의 부설과 융희 4(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도의위치 및 관할구역]을 새로 제정·시행할 때 경기도 시흥군의 군청소재지를 시흥면 읍내리에서 하북면 영등포리로 이전하면서 한촌이던 영등포지역은 교통·상업의 중심지로 급속도로 성장·발전하였다. 1917년에는 영등포면으로 승격하여 영등포리 당산리 양평리를 관할하였고, 1931년에는 영등포읍으로 승격하였다. 1936년 4월 일제는 당시 경성부의 구역을 크게 확장하면서 동부출장소와 영등포출장소를 새로 설치하여 경성부에 이왕에 설치했던 용산출장소와 함께 3개 출장소를 두었다. 이때 현재 영등포지역은 경성부 영등포출장소 영등포정 당산정 도림정 양평정 양화정, 실길정으로 재편성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여의도동이 된 여의도정은 경성부에, 지금의 대림동이 된 번대방리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에 속해 있었다. 1943년 6월 10일 출장소를 영등포구역소로 개칭하였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1946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가 되었으며, 그 때 일본식 동명인 [정]을 우리식 동명인 [동]으로 변경 통일하였다. 그 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성장·발전하여 한 때는 서초구 관악구 동작구 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등에 걸친 광대한 지역이 영등포구에 속해 있었으나 1973년 7월 1일 관악구가. 1977년 9월 1일 강서구가. 1980년 4월 1일 구로구가 분구되어 나가 지금의 영등포지역을 이루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