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동 永登浦洞 [법정동]
영등포동의 ‘영등’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영등포동 이웃에 있는 신길동 방아곶이나루터 부근(신길동 50번지)의 성황당에서 영등굿을 했기 때문에 영등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영등포동은 조선 초에는 금주현이라고 하다가 태종 15년(1415)에 금천현이 되었다. 영조 때는 경기도 금천현 하북면 방학호리로 되었고 정조 19년(1785) 2월 1일에는 금천현을 시흥현으로 고쳤다.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실시된 23부제에 의해 인천부 시흥군 하북면 영등포리로 바뀌었다가 이듬해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해 실시된 13도제에 의해 다시 경기도에 속하였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고 1904년에 경부선이 개통되자 이곳이 교통의 요충지가 되고 주민 수가 늘었으므로 일제는 1910년 12월 7일 조선총독부령 제53호로 시흥군청을 군내면 군내동(지금의 시흥동)에서 이곳 하북면 영등포리로 옮겼다. 1914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시흥군 상북면과 하북면, 과천군의 하북면과 상북면 일부를 합하여 시흥군 북면으로 통합되고 시흥군 하북면의 하방하곶리·중종리·영등포리를 합하여 북면 영등포리로 칭하였다.
1917년 10월 1일 경기도령 제6호로 북면 중에서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던 영등포리·당산리·양평리의 3개 리를 분리시켜 영등포면을 신설하였다. 이때 영등포라는 이름의 행정구역 명칭이 처음 탄생하였다. 영등포면은 신설과 동시에 조선총독부령 제67호로 指定面이 되었고, 1931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03호로 영등포읍으로 승격되었다.
1936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와 경기도고시 제32호에 의한 경성부 구역 확장으로 당시 시흥군 내에서는 영등포읍 전역과 북면 중 상도천 우안 지역과 도림천 우안 지역, 동면 중 상도리가 경성부에 편입되어 영등포리는 영등포정이 되었다. 이 구역 확장에 따라 경성부조례 제6호로 용산·동부·영등포의 세 출장소를 두었으며, 영등포정은 영등포 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조선총독부령 제163호로 區制度가 실시되면서 경성부 영등포구 영등포구정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영등포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1936년부터 도시계획에 따라 영등포구의 영등포동·당산동·양평동·문래동 일대를 구획정리사업지구로 지정하여 추진하였는데, 1946년 8월 서울특별시공고 제46호로 환지처분을 마치고 1947년 9월 8일에 구획정리사업을 완료하였다. 또한 광복과 6·25전쟁 후 인구가 증가되면서 경부선 남쪽 지역만을 영등포동으로 남고 그 북쪽 구획정리사업이 완료된 지역은 영등포동 1·2·3·4·5·6·7·8가로 분할되었다. [출처 : 서울지명사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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