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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의 <호암산설(虎巖山說)>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09-07 조회수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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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尹慈, ?~?)는 본관이 파평(坡平)으로 조선 세종 29(144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문종 즉위(1450)년에 금천현감(衿川縣監)이 되었고, 단종 3(1455)년에는 지평(持平)이 되었다. 세조가 즉위하자 지평으로 있다가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고, 4(1458)년에는 집의(執義)가 되었으며, 5(1459)년에는 내자판사(內資判事)로 있었고, 8(1462)년에는 사간(司諫)으로 있었으며, 9(1463)년에는 지병조사(知兵曹事)로 있었다. 11(1465)년에는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가 되었고, 14(1468)년에는 한성우윤(漢城右尹)으로 있었다. 예종 1(1469)년에는 한성좌윤(漢城左尹)으로 있다가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가 되었고, 성종 1(1470)년에 다시 한성좌윤(漢城左尹)이 되었다.

  윤자의 <호암산설>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에 실려 있다. 다음은 그것을 번역한 것이다.

 

  금(衿)천의 동쪽에 산이 있는데 우뚝 솟은 산세가 북쪽으로 치달아 범이 가는 것 같고, 깎아지른 듯이 높고 험한 바위가 있는데 세상에서는 이름을 호암(虎巖)이라고 한다. 술가(術家 : 복술가(卜術家))가 그것을 점치고 바위 북쪽 모퉁이에 절을 세우고서 호갑(虎岬)사라고 하였다. 거기서 북쪽으로 7리 거리에 다리가 있는데 궁교(弓橋)라고 하고, 또 거기서 북쪽으로 10리 거리에 암(庵)자가 있는데 사자(獅子)암이라고 하니 모두 그 범이 가는 기세를 누르려는 연유에서였다. 내가 경오(庚午, 1450)년 봄에 어사(御史)를 하다가 이 현에 원으로 와 보니 고을의 민속이 참으로 우애(愚? : 못나고 어리석음)하고, 나 역시 어리석었다. 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바위가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이어서 종전에 바위를 진압(鎭壓)한 것도 어리석게 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이르기를

 

  옛날에 광천(狂泉)이 있고, 음천(淫泉)이 있고, 탐천(貪泉)이 있었는데 그것을 마신 사람은 하루가 지나지 않아 미치고, 또 음란해지고, 탐을 내지 않는 자가 없어서 그와 같은 이름을 얻었다. 그런즉 이 바위 아래에서 살면서 여기에서 마시고, 여기에서 먹고, 여기에서 놀고, 여기에서 잠자고 일어나는 사람이 어리석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이치가 그럴 듯하지만 역시 알 수 없다. 옛적 오은지(吳隱之 : ?~413, 중국 동진 때 사람)가 태수(太守)가 되어 탐천(貪泉 : 중국 광주(廣州)에 있는 샘)의 물을 마셨으나 끝까지 탐하지 않고 깨끗한 지조를 지키려 더욱 힘썼다. 그리하여 시를 지어 이르기를

 

  試使夷齊飮 백이 숙제 마시게 해 보면

  終當不易心 끝내 그들의 마음은 바뀌지 않으리.(<탐천(貪泉)>의 일부)

 

  라고 하였다. 하물며 사람이 지혜롭고 어리석은 것은 애초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이지 산천(山川)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가령 이 고을에 사는 사람 중에 혹 안자(顔子)가 어진 것과 같이 어리석은듯하면서도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도 끝내 역시 알 수 없다. 이로써 미루어 보건대 고을의 민속과 내가 어리석은 것은 바위 때문이 아니다. 바위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진실로 어리석다. 아! 당나라 유자후(柳子厚 : 자후(子厚)는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자)가 염계(?溪)의 집을 사랑하여 염계를 바꾸어 우계(愚溪)라고 하였는데 이는 곧 스스로 자신의 어리석음으로써 편(扁)액한 것이니 이것은 대개 옛날 우공곡(愚公谷 : 산동성에 있는 골짜기)이 남긴 뜻으로 어리석지 않은 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안자와 같이 어리석은듯한 어리석음은 공(公)석이나 사(私)석에서 하는 한 마디 말이나 한 가지 행동 어디에서도 어리석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슬그머니 유주(柳州 : 유종원의 호)의 우계(愚溪)에서 우(愚)를 취하여 호암(虎巖)을 우암(愚巖)으로 바꾸었으니 정말로 어리석은 것을 어찌할 것인가? 감히 이것으로 설(說)을 삼아 무릇 어리석지 않은 군자(君子)를 기다린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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