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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천에 있던 우와피(牛臥陂)
작성자 관** 등록일 20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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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천에서 제일 유명했던 곳은 우와피(牛臥陂)였다.

우와피는 우와(牛臥)라고 부르는 웅덩이라는 뜻이다. 피(陂)가 웅덩이라는 한자말이기 때문이다. 우와피가 지리서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700년대 중반에 편찬된 <<여지도서>>에서이다.

 

<<여지도서>> <금천현>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우와피(牛臥陂)가 금천현 읍치에서 북쪽으로 10리에 있다. 옛적 중국사신이 왕래할 때 와우형(臥牛形) 곧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고 일컬어 그러한 까닭으로 해서 이름을 우와피(牛臥陂)라 하였다.

우와피는 동작구 신대방동 부근의 도림천에 형성되었던 웅덩이를 일컫던 말이다.

지역사람들은 쇠내피라고 불렀다. 1989년에 간행된 <<서울특별시 동명연혁고>> <관악·동작구편>을 보면 우와피를 쇠내피라고 하고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소가 누워 있는 형국으로, 옛날에는 현재의 도림천(道林川)이 넓고 수심(水深)이 깊어 도림천(道林川)을 강변(江邊)이라 불렀다. 특히 물이 맑아 지금의 도림4동(道林4洞)파출소 부근을 옥수(玉水)라 불렀다. 현재 문창국민학교 정문 앞 강 속에 높이 10여m나 되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에는 직경 2자 가량의 크기로 글씨(?)가 새겨져 있었으며, 당시 마을사람들 사이에 ‘이 바위가 땅속으로 완전히 묻히면 천지가 개벽한다.’라는 구전(口傳)이 전해졌다.

그 뒤 6·25동란을 전후하여 하상이 높아져 점차 바위는 도림천(道林川) 땅속으로 묻히기 시작하였으며, 지금부터 5~6년 전에도 이 바위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최근 전철역(電鐵驛)이 생기면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우와피가 유명하니까 우와피를 딴 마을이름도 생겨났다.

지금은 신대방동이 된 우와피리(牛臥陂里)라는 마을이 그것인데 우와피리는 조선시대 지금은 영등포동이 된 영등포리 지금은 동작구 대방동이 된 번대방리 등과 함께 금천현 하북면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1914년 일제가 대대적인 행정구역개편을 할 때 번대방리에 통합되어 번대방리가 되었고, 지금은 분리되어 동작구 신대방동이 되었다.

 

한편 1991년에 간행된 <<영등포구지>>를 보면 우와피(牛臥陂)를 ‘현 대방동(大方洞)에 있는 언덕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이야기했듯 우와피는 신대방동 부근의 도림천에 형성되었던 웅덩이를 일컫던 말이다. 그러므로 대방동은 당연히 신대방동이라고 해야 맞고, 언덕은 당연히 도림천에 형성된 웅덩이라고 해야 맞다. 우와피의 피(陂)를 웅덩이로 새기지 않고 언덕이나 비탈을 뜻하는 파(陂)로 잘못 새겨 언덕이라고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와피를 언덕으로 오해하게 된 것은 그 동안 도림천의 지형이 변하여 우와피가 본래 모습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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