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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마루공원
작성자 관** 등록일 201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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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로터리 부근에 중마루공원이 있다.

1997년에 조성하였다. 면적이 2,000여 평이나 되는 공원으로 이렇다 할 산이 없는 영등포로서는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쉼터이자 녹지공간이다.

 

여기서 중마루공원을 거론하는 것은 중마루라는 공원이름 때문이다.

공원이름을 중마루라고 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중마루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었다. 아직도 영등포 토박이 중에는 영등포역 부근을 중마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중마루는 와전되어 죽마루라고도 하는데 중마루라는 마을 때문에 중마루공원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중마루공원이 된 지역이 중마루라고 불리던 마을에 속해 있었는지 아닌지는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어쨌든 중마루라는 마을이름을 따서 중마루공원이란 이름을 붙인 것만은 확실하다.

 

중마루라는 마을이름의 한자표기는 중종리(重宗里)이다.

중종리는 한 때는 독립된 마을이었지만 1914년 하방하곶리(下方下串里)와 함께 영등포리(永登浦里)에 통합된다. 그렇다면 중종리는 언제부터 독립적인 마을이 되었을까? 중종리가 언제 독립적인 마을이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적어도 1904년 이전에 독립되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영등포구지>>를 보면 1904년에 안핵사(按?使) 안종덕(安鍾悳, 1841~1907)이 작성한

<<시흥직산안핵사주본(始興稷山按?使奏本)>>에 수록된 시흥과 관련된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곳에 중종리가 등장한다.

 

<<시흥직산안핵사주본>>은 경부선철도건설에 동원된 강제부역과 관련하여 일어났던 시흥 직산의 민요(民擾)를 조사한 안핵사 안종덕의 사건처리보고서로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1899년 11월에 저술된 <<시흥군읍지>>가 1904년과 가장 가까운 연대의 지리서이다. 그러나 이 책에 중종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종리가 독립적인 마을이 되는 시기는 적어도 1899년 11월 이후 1904년 이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중마루는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형성된 마을이름이었다.

그런데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는 원래 고추말고개 도림이고개가 있었다. 1985년에 간행된

<<서울특별시 동명연혁고>> <영등포구편>을 보면 영등포1동을 설명하면서

영등포역(永登浦驛)을 중심으로 그 주변 전체를 관할하는데 …… 이곳은 예부터 전해 오는 옛 지명이 지금도 그대로 불리고 있다. 고추말고개는 도림동(道林洞)과 신길동(新吉洞)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도림이고개는 도림동(道林洞)으로 넘어가는 고개였다고 하였다.

 

영등포역 일대가 등성이였고, 그래서 고개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영등포역 일대가 고개가 있는 등성이였다는 사실은 1991년에 간행된 <<영등포구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등포구지>>를 보면 영등포역(永登浦驛) 일대에 대해

<<조선철도사(朝鮮鐵道史)(1)>> p. 112에 나오는 경부선(京釜線) 철도(鐵道) 기공식(起工式) 장면의 사진을 보면 당시의 영등포역(永登浦驛)은 꽤 높은 곳 즉 재 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또한 1925년의 을측년(乙丑年) 대홍수(大洪水) 때도 영등포(永登浦) 일대가 모두 침수되어 거의 원형(原型)을 남기지 않을 정도가 되었는데 유독 철도관사(鐵道官舍)만은 전혀 침수(浸水)되지 않은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는 기록도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마루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될 것은 고추말고개이다.

<<서울특별시 동명연혁고>> <영등포구편>을 보면 고추말고개에 대해 영등포제1동과 도림동 경계에 있는 고개로 소개하면서 '고개가 가파르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하였고,

<<영등포구지>>는 고추말고개에 대해 영등포제1동(永登浦第1洞)과 도림동 10통(統)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소개하면서 ‘겨울에 고추처럼 매운바람이 분다 해서 고추말고개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야기는 고추말의 ‘고추’를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생겨난 민간어원설(民間語源說)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고추’를 '곧추'로 해석하고 ‘굽히거나 구부리지 아니하고 곧게’라는 뜻을 취하여 ‘고개가 가파르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민간어원설이 나왔고,

고추를 매운 고추로 해석하고 맵다는 특성을 취하여 ‘겨울에 고추처럼 매운바람이 분다 해서 고추말고개라고’ 불렀다는 민간어원설이 나왔을 것이다.

 

또한 고추말고개가 지금의 영등포1동과 도림동의 경계에 있다는 주장도 그리 신빙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영등포1동과 도림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를 고추말고개로 부른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인용했던 <<영등포구지>>에서 이야기하듯 당시의 영등포역이 꽤 높은 곳 즉 재 위에 건설되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애초의 고추말고개는 영등포역을 건설하면서 허물어졌다고 보아야 하고 지금의 고추말고개는 애초의 고추말고개의 한 모퉁이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고추말고개의 고추말은 중마루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중마루의 한자표기가 중종리(重宗里)라는 점을 생각할 때 중마루는 중(重)마루인데 중(重)에 ‘겹치다.’라는 훈이 있다는 사실에 기대어 고추의 이 지역 방언인 ‘고치’ 혹은 ‘꼬치’라는 소리를 차자표기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중마루의 마루가 '마루'라는 훈을 갖고 있는 종(宗)으로 표기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중마루의 마루는 산이나 고개 등의 등성이를 일컫는 우리말이고, 고추말의 말은 마루에서 변이된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치말 혹은 꼬치말의 고치 혹은 꼬치는 무엇에서 연유하는 말일까?

영등포역(永登浦驛) 부근에 있었던 고추말고개가 방아곶이 있었던 신길역(新吉驛) 부근에서부터 벋어 올라간 등성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곶(串)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생각된다.

지금도 우리가 곶으로 읽는 관(串)의 요즈음 말은 곶에서 변이된 꼬치이다. 꼬치구이라고 할 때의 꼬치이다. 고추말고개를 방아곶이에서 벋어 올라간 등성이로 인식하여 그와 같은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한편 영등포본동에 고추마을이 있고, 그 마을 사람들이 고추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동네 사람들이 자신의 동네를 고추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은 고추말고개의 고추말을 고추마을로 해석하고, 또 고추를 사람이 먹는 고추로 해석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추말고개에 대해 이왕에 ‘겨울에 고추처럼 매운바람이 분다 해서 고추말고개라고' 불렀다고 하는 민간어원설이 있고 보면 그 동네 사람들이 고추말고개의 고추를 먹는 고추로 생각하고 고추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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